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인 첫째 조카가 자주 하는 대답이 있다.
"몰라"
그닥 특별할 것 없고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른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대답이지만 문제는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인 질문에도 항상 "몰라"로 대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OO야 배고파?' 라던지, '~ 이거 좋아해?'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었어?' 같은 본인의 기분이나 의사를 묻는 질문에도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미운 X살 뭐 이런 느낌의 반항으로 그냥 모든 질문에 몰라로 응수하는 건 아닌가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점점 정말로 자신이 가장 잘 알것 같은 자신의 기분이나 기호 같은 것을 잘 몰라서 그런 대답을 내어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명확히 치우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배는 고픈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론 입맛이 없다거나, 그리고 기분이야말로 항상 세상 복잡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대표적으로 시원섭섭 같은? ㅋ 생각해보면 난 예전부터 "what's your favorite~?" 같은 류의 질문을 싫어했다. 다양하고 많은 선택지 중 딱 하나만 고르는 그런 질문 들은 선택을 항상 어려워하는 내게 고문과도 같았다. 나도 이런데 조카님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끝과 저 끝 사이 어디쯤인데 그게 어디쯤인지 어디에 가까운지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그렇게 세밀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이 부족해서 "몰라"로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그건 알고 모르는게 아닌데 그걸 왜 몰라~' 라고 하지 않고 모를 수 있다고 격려해 줄 껄.. 사실 나도 그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전에 내 감정을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사건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감정을 내가 스스로 속일 수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 심지어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 표현을 내가 직접 경험했을 때 그 충격이란 정말 엄청났다. 평소 자신감 같은게 많지 않던 나였지만 그래도 나란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잘 알고있다는 나름의 부심 같은게 있었던 모양이다. 나의 연약함을 항상 줄줄 읊는다고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나의 감정, 나의 느낌은 나도 모를 때가 많다. 따지고보면 결국 내가 뭘 원하고 뭘 하고싶은지, 뭘 잘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이렇게 오랜 시간 방황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알지 못해서 이기도 하고 답을 내리는 선택을 피하고 있는 건지도.
블로그라도 열심히 써야지 라는 나의 결심은 아무런 힘이 없어서 요즘 자꾸 다른 곳으로 도피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뭐든 to-do가 되어버리면 놀랍도록 의욕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엄청난 정보글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쓸 수 있고 또 쓰고싶은 주제도 많았는데 왜 이렇게 포스팅 하나 하기도 힘들지 라는 생각에 간만에 끄적끄적 스타일로 써보기로 한 오늘의 포스팅 이렇게 대충 마무리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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